구의 증명 (최진영 정, 은행나무 출판)
"애구"가 죽음을 맞았다. 길바닥에서....
구의 몸을 만지면서 빠진 머리카락을 먹었다.......는 첫 부분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책을 덮기엔 책의 유명세와 글쓴이의 필체가 나를 주저하게 한다.
이 책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책을 대여했는데, 이건 뭐지? 싶어서 책을 덮고 검색을 시작한다.
"구" 와 "담" 의 이야기.
우선 기괴한 소설은 아닌게 분명하다.
다시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는데, 170 페이지라 쉽게 읽혀지기도 했고, 구와 담의 인생이 힘들어 빨리 감기하듯 읽어지기도 했다.
초등학교때 같은 반이었지만,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학교를 빠지고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우연히 만나 둘은 "구"가 "담"이 되고 "담"이 "구"가 되었다.
내가 이 책을 20~30대에 읽었다면 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중년이 된 지금은 억지로 그 사랑에 나를 맞추며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담은,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비구니로 절에 살고 있던 이모의 보호아래 성장했다.
구는, 부모가 열심히, 쉴 틈도 없이 일을 하지만, 그들이 진 빚을 그대로 물려받아 빚을 갚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사채빚은 더 늘어만 가고 자신의 삶도 없이 살아가는 청년이다.
불행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은 구가 다니던 공장에서 만난 노마라는 꼬마와 함께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둘 앞에서 노마의 교통사고를 목격..
구와 담은 그 불행을 시작으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구는 잠시 공장에서 만난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구와 담은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져있었음에도, 언제나 하나였다... 라는 묘사가 적절하게도 언제나 하나였고, 사채업자를 피해 도망을 다닐때도,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에도 구의 시체를 먹음으로 담과 구는 여전히 하나였다.
두 남녀의 사랑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게, 독특하게 표현했던 소설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듯 하다.
참기 싫다고, 참는 게, 싫어 졌다고, 나한테 묻지 말라고. 내가 뭘 알겠느냐고. 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근데 여긴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 아닌 세상 아니냐고. 나보다 오래 살았지만 어른 같지는 않은 누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버렸다. (91p)
...이의 친구에게, 네가 아직 세상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아니고, 그건 힘들고, 그건 말이 안 되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대부분의 문장이 그렇게 시작되거나 끝났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잠깐씩 노마와 구를 잊을 수 있었다.
노마와 구에 상관없이도 나는 불행해졌다.
기이했다.
노마가 죽었는데, 노마의 죽음을 망각하고도 불행해진다는 것이.
구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불행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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